덕룡산(德龍山 492m)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에 있는 부드럽고 평온한 육산이다. 산세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겹겹이 둘러선 능선과 봉우리 덕분에 아늑한 깊이를 품고 있다. 거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강진의 덕룡산과 이름이 같지만 산의 모양은 전혀 다르다. 산기슭에 고사찰 불회사(佛會寺)가 있다.
지도를 보면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 서쪽 능선에 덕룡산(376.4m)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불회사 안내도 및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불회사 서쪽 492봉을 일반적으로 덕룡산이라 한다.
날씨 : 맑음
코스 : 일주문-호랑비숲길-불회사갈림-삼거리봉(454m)-덕룡산(492m)-빽,삼거리봉-깃대봉-일봉암(日封庵)-일봉亭-도로-일주문 9km
일주문


호랑비숲길
불회사 주변의 자연경관을 따라 조성한 총 2.6㎞의 순환형 숲길로 2025.11. 개통



편백나무 숲



비자나무 숲

단풍나무 숲

불회사 갈림길



능선에 올라 덕룡산으로




삼거리봉(454봉) --> 덕룡산 왕복



덕룡산(492m)


덕룡산 왕복 후 삼거리봉 --> 깃대봉


깃대봉 폐헬기장

조망처


일봉암 갈림길

일봉암(日封庵)

新日封庵記
조선사찰 사료에 실린 노숙 스님의 일봉암기(1737년)에 의하면 불호사(佛護寺) 북서쪽 산너머에 암자가 있으니 일봉이라. 옛날에는 일봉(日封)이라 하였고 혹은 일류(日留)라 하며 때에 따라 몇 번이나 고쳐 불렀다. 암자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도선국사의 비보설이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고려시대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인조 정해(1647)년에 설주(雪珠) 선백이 중수하였고 숙종 경신(1680)년 성민(性敏) 서연(瑞連) 스님이 방사를 넓혔다. 근년에 들어 유영(有影) 스님이 일류(日留)의 뜻을 취하여 봉(峰) 대신에 봉(封)을 써서 일봉(日封)이라 했다고 적었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 수행도량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던 암자는 6.25라는 동족상잔의 전화를 피하지 못하고 토벌군의 빨치산 은거지 소거 작전에 의해 방화로 소실되었다. 비구 정연(淨然) 스님은 불회사 큰절에서 대다라니 3년 결사를 대중들과 함께하면서 일봉암 복원을 발원하고, 자운영보살 등 수행공덕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불기 2555(2011)년에 원통전을 그 이듬해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불기 2557(2013)년 동안거에 수행공덕회 회원들과 함께 인도 부처님 성지를 순례 정진하며 일봉암에서 10년간 폐관정진을 입제 하였다. 10년간의 폐관정진은 관음행보살을 비롯한 수행공덕회 회원들의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 동참정진과 공양 후원으로 불기 2567(2023)년 동안거까지 만 10년간 폐관정진을 원만히 마치고 동안거 해제 후 수행공덕회 회원들과 함께 인도성지순례에서 돌아와 폐관정진을 회향했다.
원진국사 해를 잡아 부처님 뜻 이었듯이
이제 다시 도량 열어 부처님 뜻 전하리라
불기 2568(2024)년 정월에
(안내도)


일봉정


맑은 날씨에는 저 멀리 금성산~화학산 능선의 풍력발전기가 보이는데... 오늘은 꽝

하산길



불회사
덕룡산(德龍山) 불회사(佛會寺)는 동진 태화 원년(서기 366년)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께서 창건하신 고사찰이다. 동진 태화 원년(서기 366년)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께서 창건하였고, 당나라 현경 초(서기 656년)에 신라의 희연조사(熙演祖師)께서 재창하였으며, 원 말 지원(至元) 초(서기 1264년경) 원진국사(圓眞國師)께서 삼창(三創)하였다. 조선 정조 22년(서기 1798년) 2월 덕룡산에 큰 불이나 사찰의 전각이 완전히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지명(知明) 스님이 기미년(서기 1799년) 5월 15일 상량하였고, 1808년에 전각을 모두 복원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지리서를 보면 불회사는 과거에 불호사(佛護寺)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 창건 때는 불호사로 불리다가 1808년 순조 8년 무렵부터 지금과 같은 불회사로 절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문화재로는 나주 불회사 대웅전(보물), 나주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보물), 나주 불회사 석장승(국가민속문화재), 나주 불회사 원진국사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나주 불회사 소조보살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이 있다.
(안내도)

나주 불회사 석장승
국가민속문화재 제11호
장승은 나무나 돌로 만든 사람 모양의 형상으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졌다. 마을을 수호해 준다고 여겨졌으며 때로는 지역 간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불회사 앞 약 300m 지점에는 2기의 석장승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오른쪽에 남장승이고 왼쪽이 여장승이다. 석장승을 세운 시기는 분명하지 않은데, 1719년에 만든 인근 운흥사 석장승과 모습이 비슷한 점으로 보아서 18세기 초반으로 추정한다.
남장승은 얼굴의 조각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을 땋아 내리고 머리 윗부분은 혹처럼 솟아 있어 마치 상투를 올린 듯한 모습이다. 여장승은 표정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눈썹까지 새겼다.
(안내도)

남장승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여장승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연리목(느티나무 + 고로쇠나무)


진여문 천왕문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

대양루
아래쪽에서 볼 때는 2층 누각, 위쪽 절마당에서 바라보면 단층. 대양루 상층은 천수전으로 나무 통판에다 조각을 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돼 있다.

대웅전
(보물 제1310호)
대웅전 안에는 건칠비로자나불(보물 제1545호)이 봉안돼 있다.


대웅전 뒤편 산기슭 동백나무 숲


명부전

10여 채에 이르는 전각들이 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 자형을 이루고 있다.


나한전

삼성각

극락전

범종각

불회사 호랑이 전설
불회사는 백제때 인도 마라난타 스님이 건너와 창건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원진국사가 불회사를 중창할 때 호랑이가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원진국사가 탁발을 하러 다니던 어느 날 저녁, 원진국사는 산 길에서 호랑이를 만나게 됩니다. 호랑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한 채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호랑이의 목에는 커다란 비녀가 걸려 있었습니다. 원진국사는 호랑이에게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목 안에 걸려있는 비녀를 뽑아 호랑이를 낫게 해 주었습니다. 그해 겨울 호랑 이는 한 처자를 물어다 절마당에 내려놓고 갔습니다. 원진국사는 성심을 다해 처자를 간호하여 기력을 회복한 후 처자의 집을 찾아가 보니 안동 만석꾼 김상공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김상공은 은혜를 갚기를 청했습니다. 원진국사는 불회사 복원에 시주하기를 청하고 작은 걸망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걸망은 쌀을 부어도 가득 차지 않았고 이에 곳간에 든 쌀을 다 비우고서야 가득 찼다고 합니다. 김상공의 시주로 불회사는 중창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안내도)

흑조수(黑鳥樹)
이 나무 등치는 불회사 남암(南庵) 터 뒤편에 있던 두 그루의 잣나무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나무를 잣나무의 한문 이름인 백수(柏樹)로 부르지 않고 흑조수라 부르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 불회사의 삼창주(三創主) 이신 원진국사께서 말년에 남암(南庵)에 주석하시면서 생긴 일화로부터 비롯된다. 스님께서는 '까만 새가 날아와 이 잣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면 뜰에 나가시어 그 까만 새와 대화를 나누었다' 한다. 이로부터 이 잣나무는 흑조수라 불러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야기를 지닌 이들 잣나무는 근년에까지 잘 자라고 있었으나 2000년 낙뢰(落雷)로 인하여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부러져 죽은 후 나머지 한 그루마저 시름시름 말라죽어 갔다. 이에 지난 2006년 다시 잣나무 두 그루를 그 자리에 심어 놓은 뒤, 고사한 나무의 등치를 이곳에 안치하고 그 연유를 적어 놓는다.
(안내도)

